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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희덕 산문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출간 전 연재] #8
_ 봄을 봄
봄을 봄
찬바람이 부는 거리에 한 걸인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의 목에는 "나는 앞을 볼 수 없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고, 바닥에는 동냥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눈여겨보거나 바구니에 돈을 넣어주지 않았다. 한 남자가 지나가다가 돌아와서는 걸인의 목에 걸린 팻말에 무슨 말인가 덧붙여 썼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지나가다 발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고, 바구니에는 동전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뀐 팻말의 문장은 이러했다.
이제 곧 봄이 오는데, 나는 앞을 볼 수 없습니다.
그 문구를 고쳐준 사람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부르통이었다. 봄의 찬란한 생명력과 대비시킴으로써 앞을 보지 못하는 걸인의 불행을 극대화한 데서 부르통의 작가적 기지와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이 일화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존재들도 어떻게 발견하느냐에 따라 경이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부르통은 경이를 이렇게 정의했다.
경이는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다. 아니, 경이로운 어떤 것도 아름답다. 사실은 경이로운 것만이 아름답다.
원래 아름다운 대상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 발견해낸 자가 느낀 경이로움에 의해서만 만물은 아름다워 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만일 봄이 아닌 다른 계절이었다면 어떠했을까. 그 정도로 강렬한 인상과 연밍늘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을 것 같다.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만물이 하나둘 피어나는 봄날의 모습은 다른 계절에 느끼는 자연의 변화와는 분명히 다르고 특별하다. 살아 돌아온 모든 존재들에게 한없는 찬탄과 축복을 보내고 싶은 계절. 연록빛 새순과 꽃망울들을 보면 저 여리고 고운 빛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지 궁금해지는 계절.
이제 곧 봄이다. 아니, 봄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둘러보면 어제의 빛이 다르고 오늘의 빛이 다르다. 자고나면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이 돋아나 있고 피어나 있다. 그 움트는 존재들을 들여다보는 사이에 봄날은 지나가리라. 그래서 누군가는 '봄'이라는 계절의 이름이 '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라고 말했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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