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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의 국가(國歌)

설률 2017. 2. 13. 11:16

출처 : 월간 방송작가 - 1월호


時代共感 - 인간적인 소음


세번의 국가(國歌)



김영대 - 대중음악 평론가, 연구자



 1969년 8월 18일 월요일 아침. 뉴욕주의 시골 동네 화이트 레이크에는 안개가 자욱했고 내린 비로 땅을 질퍽거렸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바로 그때, 평화와 사랑의 기치를 내걸고 3일간 펼쳐진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가 시작되었다.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올라 사이키델릭 록의 진수를 선보이고 있던 지미 헨드릭스는 그의 대표작 'Purple Haze'를 엔딩으로 부르기에 앞서 별안간 익숙한 선율 하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 그대는 보이는가, 이른 새벽 여명사이로..." 로 시작되는 미국 국가 'Star Spangled Banner'였다. 그리고 그 순간은 바로 역사가 되었다.

 그는 단 한소절도 입으로 부르지 않았지만 시그니처 사운드인 앰프 피드백을 통한 절규하는 기타음은 모든 것을 이야기 했다. 그것은 매우 놀랍고 감동적이며, 또 두려운 한순간이었다. 다소 평범하게 한음 한음을 이어가던 그는 마침애 "포탄의 붉은 섬광과 창공에서 작렬하는 폭탄이"라는 가사에 대응하는 부분에 이르자 원래의 가사가 담고 있던 의미를 넘어 그 가사가 바로 그 순간에 의미하는, 혹은 그래야만 하는 것들을 현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전기 기타의 격렬한 울부짖음은 자유를 갈구하기 위해 그 옛날 미국 하늘을 수놓았던 붉은 섬광이 아닌 명분 없는 전쟁을 위해 베트남 전역에 뿌려진 포탄을 상징했고, 찡그린 얼굴로 트레몰로 암을 잡아당기는 그의 모습은 총탄 앞에 스러진 죄 없는 사람들의 절규와 울음을 음악을 통해 느끼고 표현하는 것만 같았다. 바로 그 순간, '별이 빛나는 깃발'이 의미하는 미국인들의 '애국'은 헨드릭스의 연주에 의해 전혀 새롭고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나라에 대한 사랑은 단순히 그것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행위만이 아니라 그것이 행한 불의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통해서도 변함없이, 때로는 더 절실하게 표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20여 년 후인 1991년 1월 27일, 제25회 미식축구 슈퍼볼<Super Bowl XXV>이 열린 플로리다주 탬파 스타디움에는 여느 때와는 다른 경건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례적으로 미국 국기를 흔드는 7만 명의 청중 앞에 선 휘트니 휴스턴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Star Spangled Banner'를 선보였다. 정말 수없이 불리고 또 불렸던 곡이지만 바로 그 순간, 휘트니의 벅차오르는 목소리로 전달된 '깃발'의 의미는 미국인들에게 남다른 것이었다. 바로 베트남 전쟁 이후로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 기록되었던 걸프 전쟁이 시작된지 불과 열흘이 흐른 날이었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 타국에서 수행된 그간의 전쟁을 통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잃은 미국인들의 염려는 극에 달했지만 60년대 반전운동과 달리 나라와 군대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인들을 향한 염려의 목소리가 그 자리를 메웠다.

 휘트니의 노래는 바로 그 국가주의적 정서를 정확히 반영했다. 흑인 교회의 성가대처럼 고양된 목소리로 '새벽 여명'을 노래한 그녀는, '치열한 전투'를 말하는 와중에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고 나긋한 목소리로 마음을 보듬더니, 이내 '하늘에 휘날리는 깃발'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더 없이 확신에 찬 얼굴로 음을 내지르며 전쟁의 승리와 조속한 무사귀환을 바라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결국 우리는 승리할 것이고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은 듯한 휘트니의 이 날 공연은 80년대 보수정권을 통해 다소 염세주의로 치닫고 있던 미국인들에게 '나라 사랑'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웠다. 인종과 지향은 각자 다르지만 바로 그 순간만큼은 미국인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애국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2016년 11월의 광화문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나라 사랑의 장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공간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자발적으로 모인 수백만 인파는 모두 한마음으로 부패한 권력에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11월 19일 밤, 그 역사적인 외침에 동참해 무대에 오른 전인권은 별안간 '애국기'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의례로서의 애국가는 그곳에 없었다. 그것은 올림픽 등 국가 대항전에서 느꼈던 승리와 자랑스러움의 감정과도 또 다른 무엇이었다. 

 그 순간 애국가로 알고 있던 그 노래는 나라를 걱정하는 이들의 절실한 외침으로 바뀌었다. 전인권의 애국가는 누구처럼 실험적이지도 그렇다고 예쁘지도 않았다. 예순을 넘은 로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그의 목은 거친 음을 연신 쏟아냈다. 오른손으로 한음 한음 그려가며 정성을 다한 그의 목소리에는 '하느님의 보우하심'을 기원하는 소박하지만 간절한 마음이 깃들어 있었고, 지도자의 부정에 상처 입은 시미들을 향해 진정 '길이 보전'해야 할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웅변하는 것처럼 들렸다.

 전인권이 토해낸 나라 사랑에는 헨드릭스가 들려준 것과 같은 분노와 회의의 정서, 혹은 휘트니의 목소리가 들려준 승리와 확신의 메시지와는 달리 누군가의 잘못으로 상처받은 보통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격려가 담겨 있었다.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이 염려하고 지키려는 나라는 다른 무엇이 아닌 그 자리에 촛불을 들고 모여 어깨를 보듬은 그들 스스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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