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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봄, 새벽까지 시험공부를 하다 동이 틀 때쯤 겨우 눈을 붙였다. 얼핏 잠에 들었을 때, 방문 밖에서는 고요하면서도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달아난 잠을 억지로 청했다. 누군가 살며시 내 방문을 열더니 아무 말 없이 도로 문을 닫았다. 엄마였을 것이다.

 눈을 떠보니 여전히 아침이었는데, 웬일인지 집이 너무 적막했다. 식탁에는 아버지가 매일 아침식사 때마다 보시는 신문은커녕, 빵부스러기 하나 굴러다니지 않았다. 이 시간에 아무도 없다니, 얼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3번의 부재 후 4번째에 전화를 받으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올 것이 왔구나. 그때는 한창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시험과 리포트가 몰려있었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무엇보다 당시 4학년 2학기라는 압박감은 내 눈앞의 과제들을 모두 스트레스로 치환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외할머니는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하셨다.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매번 잘 견뎌내셨고, 이번 역시도 그래주실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이번 시험 기간만큼은 잘 넘어가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외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그날 오후, 전철을 타고 혼자 장례식장에 갈 때까지, 나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슬프지 않았고 무덤덤했다. 사실상 내가 상복을 입는 장례는 이번이 처음이었고, 게다가 고인은 나와 가깝지 않은 우리 엄마의 엄마였다. 기억을 짜내어 보아도 외할머니와의 추억은 몇 가지 없었고, 문득문득 가방 속에 넣어온 리포트 자료가 생각날 뿐이었다.

 병원 부지가 얼마나 컸던지, 입구에서 장례식장까지 걸어서 20분이나 소요됐다. 응급실부터 산부인과, 각종 외과들, 중환자실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암 센터를 지나야 장례식장에 이를 수 있었다. 사람의 인생을 병원에 비유해 설계한 것일까. 장례식장에 가까워질수록 병원의 분위기와 환자들의 표정은 죽음처럼 어두워졌다.

 의외로 장례식장은 화기애애했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일가친척들은 조문객들과 안부를 물으며 나름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친척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으니 이 한 가정을, 한 작은 사회를 일구어 놓고 떠나신 외할머니의 업적에 새삼 감사했다. 자식 복 많으신 외할머니 덕에 나에게는 이모가 다섯이나 있다. 엄마를 미처 발견하기도 전에 그 이모들의 손에 이끌려 상복으로 갈아입혀졌고 이모들은 나에게 이런저런 임무를 주셨다. 검은 옷을 입은 채 영정 앞에 서자 그제서 실감이 났다. 이제 외할머니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구나. 외할머니와 엄마는 참 많이 닮았구나.

 그런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를 찾으러 식장 한 바퀴를 다 돌았는데도 찾을 수 없었다. 괜찮으시냐고 여쭙지도 못한 상태였다. 오전의 통화에서 엄마는 당신 엄마의 임종을 지킬 수 있어 그저 감사하다는 듯이 차분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귀여운 막둥이 딸, 여섯 자매들 중 막내였던 엄마는 지금 괜찮은 것일까. 걱정이 많이 되었다.

 다시 빈소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와르르 무너졌다. 외할머니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빈소 한 가운데 덩그러니 앉아있는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가 작고 동그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장면을 보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먹먹해졌다. 조용히 뒤에서 안아주자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엄마는 이제 엄마가 없어.”

 나는 와락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는 엄마를 잃은, 오갈 데 없는 어린 소녀 같았다. 그 소녀의 슬픔에 공감하며 나는 훗날 엄마의 죽음 후에 내게 올 슬픔을 예견했다.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상실감이리라. 내 생에 가장 슬플 날을 앞서 체험한 날이었다. 이 와중에 시험을 걱정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내 마음을 추스르신 엄마는 나의 시험을 우려하셨다. 엄마의 자식걱정은 상황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에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나는 결코 잠을 잘 수 없었다. 온몸을 다해 3일장을 도왔고, 모두가 잠든 시간에 공부와 과제를 하여 장례와 시험은 상생할 수 있었다. 오로지 엄마를 위해서였다. 엄마의 엄마를 위해서였다. 엄마들은 떠나면서도 자식에게 선물을 남기고 가신다. 그래서 먼 훗날 생각해보면 내 생에 가장 슬픈 날은 가장 감사한 날이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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