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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로움에 대한 불교의 메커니즘인 사성제’. 사성제는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틀이자 깨달음의 대상이다. 이번 챕터를 공부하며 가장 마음에 닿은 부분은 괴로움은 피할 없으며 정확하게 직면하는 자리에서 해탈이 시작된다는 내용이었다. 크고 작은 괴로움들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거나 두려워서 피하거나, 또는 여러 이유들로 직면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내는 커튼들이 오히려 괴로움을 얼마나 키워왔는가. 괴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대상을 붙잡기보다는, 나의 괴롭고 불편한 감각을 부지런히 알아봐야 한다. 그리고 내외에서 일어나는 가르침들이 스스로 전개될 있도록 두어야 것이다.

 ‘괴로움의 원인이 있고, 원인의 제거는 괴로움의 소멸로 이어진다 사성제의 순서와 논리와 관련해서, 나는제거 소멸 괴로움과의 관계 변화 이해했다. 이를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한다. 해당 파트에 해탈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은 정신적 지혜의 축적을 암시한다’., ‘지혜는 자아와 실재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재구성함으로써 개인을 존재적 중독에서 회복시키는 통찰력의 점진적 또는 즉각적 계발을 말한다라고 설명된 문장이 있다. 점에서 대상과 관계 짓는 방식, 대상으로 인해 일어나는 감각, 느낌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재구성하도록 지혜를 계발하는 것이 불교 기반의 심리치료 목표이자 기제일 것으로 생각된다. (서양 심리치료 철학을 관통하는 점에서 불교에 다시금 감탄)

2장을 모두 읽으며, 사성제가 영원히 괴로움을 근절할 있다는 논리라는 것과 연역적 분석에 근거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알게 것은 개념과 사고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계가 나에게 괴로움을 주었다. 공부하는 동안 답답함이 자주 느껴졌다.

 제대로 안다는 것은 뜨거운 물에 손을 넣으면 안 된다 수준으로 수행과 반복을 통해 체득된 것인데, 관점에서 사성제 또한 실제 삶에서 수행으로 내면화되고 체득된 이후에야 안다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식적으로 알고자 하기보다 공부를 하며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실증적으로 관찰될 없는 사성제의 변수를 관찰해낼 있는 곳은 오직 나의 내면의 경험이다.  답답함을 해탈의 원인으로 삼아 삶에서 수행해야 할 것이다.  

 

 

 

<꽃과 잎이 진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는 봄 - 23년 3월 말, 동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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